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의문점 (문단 편집) === 5.18 당시와 직후의 암매장 의혹과 시신발굴 === 5.18 당시에도 암매장에 대한 의혹은 존재했다. 항쟁 처음부터 자행된 계엄군의 만행은 그런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리하여 실제로 해방광주 기간 동안 시민들이 암매장된 시신들을 찾아다녔고 실제로 시신을 발굴한 사례도 있었다. 전남대 학생과장이었던 서명원은 계엄군이 철수한 후 전남대로 돌아와 교정을 둘러보다가 피 묻은 허리띠와 신발 더미를 발견했다. 혹시 죽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변을 뒤졌다. 암매장했다는 소문도 있던터라 학교 뒷산에도 가보았다. 거기서 솔잎이 유난이 많이 쌓여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여 발로 밟아보니 쑥 들어갔다. 파보니까 고등학생 시체 한 구가 나왔다. 시체는 칼맞은 자국도 있었고 구타당한 흔적도 있었다. 소지품을 훑어보니까 광주상고생인 것 같았다. 광주상고에 연락 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 시체를 상무관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 시신은 아마 광주상고 2학년생이던 이성귀(16세)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광주상고 재학생 중 그가 유일하게 27일 이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광주상고에 다니다 죽은 학생은 이성귀, 문재학, 안종필인데 문재학과 안종필은 27일 전남도청에서 죽었다.]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523&sfl=wr_content&stx=%EC%95%94%EB%A7%A4%EC%9E%A5&sop=and&page=2|#]][[http://cyber.518.org/sub.php?PID=01&bury_name=%EC%9D%B4%EC%84%B1%EA%B7%80|#]][[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11&sfl=wr_content&stx=%EC%9D%B4%EC%84%B1%EA%B7%80&sop=and|#]] 계엄군에게 사살된 사망자 중 일부는 시민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고, 여전히 발견되지 못한 시신이 더 많았다. 계엄당국은 5.18 진압 이후 탄압과 은폐에만 급급하여 매장된 시신들을 찾는 데는 회의적이었다. 결국 시청 내 민원담당부서인 '복지계'에서 시신 수습이 이루어졌다. 시청 직원들은 '''시민들의 제보 등을 통해 광주시 곳곳에서 암매장되어 있던 시신들을 찾아냈다.''' 시신이 묻힌 곳은 대개 급하게 무언가를 묻은 흔적이 보이거나 시신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주로 계엄군이 주둔하던 곳(전남대, 광주교도소, 주남마을 등)이나 그 주변지역(인근 야산)이었다. 가장 어린 암매장 피해자는 [[송암동(광주)|송암동]] 야산에서 발견된 신원미상 사망자 중 하나인 '''4세''' 가량으로 추정되는 어린이가 있다. 현재 이 어린이는 무명열사 묘 5기(묘역번호 4-90[* 신동남 씨로 확인되었다.], 92, 93[* 김재영 군으로 확인되었다.], 96[* 양창근 군으로 확인되었으며 기존에 양창근 군 묘역에 묻혔던 무명열사는 김광복 군으로 확인되었다.], 97) 중 4-97 묘역에 잠들어 있다. 이 아이는 [[1980년]] [[6월 7일]] [[광주광역시]] [[남구(광주광역시)|남구]] [[송암동(광주)|송암동]] 야산에서 여자 옷에 싸여 암매장된 채 발견되었다. 1000원짜리 지폐 한장과 함께 발견되었다.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995312.html|한겨레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현재 죽음과 관련하여 여러 증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송암동 야산은 [[광주효덕초등학교]] 근처의 야산으로 [[광주효덕초등학교]]는 광주에서 나주나 목포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있는 학교이다. 때문에 계엄군이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는 길목인 현재 지원동/용산동 근처 산에서 진을 치고 학살을 자행한 뒤 앞에 있는 광주천 근처의 밭과 진흙을 파거나 근처에 있는 당시 현대교통 종점에 총살로 피범벅이 된 수많은 시신들을 암매장했던 일이 광주에서 나주나 목포로 가는 길목인 송암동/진월동 근처 산에서 진을 치고 학살을 지행한 뒤 근처 산에 암매장함으로서 똑같이 일어난 것. 실제로 효천역과 효덕초교 근처의 도꾸 구덩이(분뇨 수거장)에 총 맞아 죽은 수많은 시신을 마구 넣었다는 증언이 있다. ● 시신발견지역: 광주교도소, 전남대학교, 주남마을, 지원동, 상무대 101사격장, 인성고 앞산, 효덕동, 천일버스 종점, 일곡부락 산, 부엉산 등 ● 시신미발견지역: 송암동, 조선대(뒷산), 생용저수지, 광주비행장 초소, 황룡강 주변지역, 화정동 잿등 부근지역, 학동 현대교통 종점, 용산동 광주천변 근처 밭과 진흙, 효덕동 분뇨수거장(도꾸 구덩이) '''조성갑(광주시청 사회과) 시신 발굴 일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면개정판)>,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창비, 2017, 455~456쪽/다만 수습일자는 작성자의 기억에 의존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조성갑은 복지계 직원이 아니었는데도 자발적으로 시신 수습에 나섰으며 그에 대한 일지를 남겼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apid81&logNo=120173368528&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그의 검찰진술조서]]] || '''{{{#ffa0a0,#5f0000 구분}}}''' || '''{{{#ffa0a0,#5f0000 일자}}}''' || '''{{{#ffa0a0,#5f0000 장소}}}''' || '''{{{#ffa0a0,#5f0000 인원}}}''' || '''{{{#ffa0a0,#5f0000 인적사항(성명)}}}''' || '''{{{#ffa0a0,#5f0000 기타사항}}}''' || || 인수 || 5월 27일 || 광주교도소 || 1명 || 미상, 남, 25세 || || ||<|2> 인수 ||<|2> 5월 27일 ||<|2> 광주고 ||<|2> 2명 || 양동선(1935년생, 광주고 수위) || || || 미상, 남, 30대 || || || 인수 || 5월 27일 || YWCA || 1명 || 박용준(1956년생) || || || 인수 || 5월 27일 || 전남여고 옆 || 1명 || 이금재(1951년생) || || || 인수 || 5월 29일 || 공용터미널 욕조 || 1명 || 미상, 남, 20대 || 총상 || ||<|6> 매장, 발굴 ||<|6> 5월 29일 ||<|6> 교도소 도랑 ||<|6> 8명 || 안두환(1935년생) || 타박사 || || 장방환(1922년생) || 타박사 || || 임은택(1945년생) || 총상 || || 고규석(1960년생)[*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고영태]]의 아버지가 맞다. 참고로 원문에는 '고귀석'으로 오타가 났다.] || 총상 || || 민병열(1949년생) || 자상 || || 3구 신원 미기재 || || ||<|2> 매장, 발굴 ||<|2> 5월 29일 ||<|2> 교도소 앞산 ||<|2> 2명 || 최열락(1953년생) || 총상 || || 1구 신원 미상 || || || 신고, 접수 || 5월 29일 || 지원동 도로 옆 고랑 || 7명 || 7구 신원 미상 || 여성 1구 포함 || ||<|11> 인수, 발굴 ||<|11> 5월 29일 ||<|11> 상무대 101사격장[* 총 14구가 가매장되었으나 3구는 가족이 인수했거나 행방을 알 수 없음] ||<|11> 11명 || 김재평(1951년생, 5월 22일 인수) || 관구 의무실 || || 조규영(1942년생, 5월 22일 인수) || 관구 의무실 || || 함광수(1963년생, 5월 22일 인수) || 관구 의무실 || || 임정식(1962년생, 5월 26일 인수) || 통합병원 || || 박종길(1956년생, 5월 26일 인수) || 통합병원 || || 양회남(1950년생, 5월 26일 인수) || 통합병원 || || 김평용(1962년생, 5월 26일 인수) || 통합병원 || || 송정교(1929년생, 5월 26일 인수) || 통합병원 || || 김형렬(경찰, 5월 26일 인수) || 통합병원 || || 전재서(1954년생, 미상) || || || 1구 신원 미상 || || ||<|2> 신고, 발굴 ||<|2> 6월 3일 ||<|2> 주남마을 뒷산 ||<|2> 2명 || 채수길(1959년생) ||<|2> 유전자 감식(2002년)으로 확인[* 이 문서 3-2에 수록된 DNA 검사 관련 표와 함께 보면 채수길 씨와 양민석 씨는 그 동안 행방불명자였다가 DNA 검사를 통해 신원 미상 시신으로 망월동에 묻혀져 있음이 드러났다.] || || 양민석(1960년생) || || 신고, 발굴 || 미상 || 인성고 앞산 || 1명 || 전재수(남, 1969년생)[*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 [[5.18 민주화운동/학살#s-8.1|계엄군의 총격으로 인해 사망한 초등학생]]이다. 그는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5.18 사망자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어리다.] || 총상 || || 신고, 발굴 || 미상 || 효덕동 논 || 1명 || 남, 20대 추정 || 총상 || || 신고, 발굴 || 미상 || 천일버스 종점 || 1명 || 김상태(1950년생) || || || 신고, 발굴 || 미상 || 일곡부락 산 || 1명 || 미상(남, 40대, 정신이상) || 정신이상(?) || || 신고, 발굴 || 미상 || 주남마을 뒷산(5월 24일, 부엉산) || 1명 || 김부열(1963년생, 조대부중 3학년) || 6월 7일(검시) || || || || || 41명 || || || 한편 피해자 가족들이 직접 암매장된 시신을 찾아낸 경우도 있었다. 서만오(25세) 씨의 사례가 그렇다. 그는 동생을 찾기 위해 5월 22일 차량을 타고가다 계엄군의 사격으로 사망했다. 군인들은 그의 시신을 암매장했고 사라진 그는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로부터 주민등록증을 받았다는 할머니의 신고를 통해 그가 계엄군에게 끌려갔다는 걸 안 가족들은 암매장 장소를 찾아나섰다. 결국 교도소 뒷산에서 그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해 오월 나는 살고싶었다(1권)>, 5.18 기념재단, 한얼미디어, 2006, 430~436쪽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187&sfl=wr_content&stx=%EC%84%9C%EB%A7%8C%EC%98%A4&sop=and|#]]] 5.18 이후 1~2달 동안 광주는 암매장된 시신들을 찾느라 분주했다. 시민들의 제보에 따라 의심되는 지역들이 파헤쳐졌고, 직접 수소문까지 해가며 시신 발굴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통 소식이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